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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미·중·일, 그들이 북한붕괴 바랄까

등록 2006-12-28 22:48

한승동의 동서횡단

6자회담 같은 걸 지켜보다 보면 남북 분단이 우리 뜻과 무관하게 자행됐듯이 남북 통일 문제도 우리 대다수 국민들 뜻과는 무관하게 진행되는 ‘그들만의’ 게임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예컨대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확실하고도 빠른 방법은 압박이나 봉쇄가 아니라 미국과 북한이 수교해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다. 북한 발신의 모든 메시지를 분석해볼 때 북한 외교의 최대목표는 미국의 승인, 미국의 체제보장, 미국과의 투자·교역 확대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따라서 핵문제를 해결해야 수교할 수 있다는 논리는 앞뒤가 바뀌었다. 수교해야 핵문제가 해결된다고 보는 게 더 정상적 사고에 가까운 것 아닌가.

중국이 북한에 대한 전략물자 공급을 끊어버리면 북한이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것도 공지의 사실이다.

‘북한 퍼주기’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의 우려를 충분히 고려하더라도, 퍼주기가 가져다 줄 효과는 예상 가능한 모든 손실을 압도할 만큼 결정적 의미를 지닌다. 식량이나 전력의 대량 공급이 만들어낼 사태를 우리는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북한의 전력사정은 공급 자체가 태부족이지만 전력의 질도 경쟁력있는 제품생산을 전혀 보장할 수 없는 수준이다. 지나치게 낙관적일지 모르나 대규모 대북 송전이 이뤄진다면 북한경제의 근간이 삽시에 남한의존적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할 근거는 충분하다. 그게 소리없는 통일로 가는 길일지 모른다. ‘퍼주기’가 북한 군부 강화로 이어지고 김정일 정권의 핵개발과 체제유지에 보탬이 될 것이라는 주장은 심정적 호소력은 있을지 몰라도 일면적이며 단견일 수 있다. 이미 회복불능에 가까운, 실패한 체제인 북한이 남한의 계산되고 통제된 ‘퍼주기’ 덕에 체제재생을 도모한다고 그게 될까. 그럴 경우 체제재생 속도보다는 남한으로의 체제 경사 속도가 몇십배는 더 빠를 것이다. 파국없는 통일의 최단 코스, 최소비용 최대효과 코스일 수도 있지 않은가.

돈많은 일본 역시 여기에 슬쩍 가담하기만 하면 소망대로 북한도 무너뜨리고 알짜배기 실속도 차릴 수 있다. 그게 악쓰고 협박하는 것보다 훨씬 더 목적달성에 유리하다는 건 누가 봐도 알조다.

그런데 왜 미국은 대북 수교보다는 수교할 수 없는 이유들에 집착하고, 중국은 물자를 공급하고, 대북 ‘퍼주기’에는 결정적인 단계에서 판판이 제동이 걸리며, 일본은 사사건건 북한을 걸고 넘어지면서 수교가 안되는 쪽으로만 끌고가려 하는가. 단순하게 생각하면, 다른 무슨 고차원적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미국과 중국, 일본, 그리고 퍼주기 반대론자들이 북한붕괴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지 않겠는가. 북한 붕괴보다는 생존이 그들에게 훨씬 더 득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이 끊임없이 동아시아에 개입할 명분을 얻고 일본을 콘트롤하게 해주는 구실로는 북한 같은 ‘문제국가’가 제격이다. ‘도광양회’를 꾀하는 중국은 완충지대를 계속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국 경제를 받쳐주는 최대 교역흑자국인 미국과의 예각적인 충돌을 피하고 협조무드를 만드는데 북한을 활용할 수 있다. 일본에게 한반도 분단은 하늘이 내려준 기회다. 만일 통일한반도가 중국으로 기울 경우 일본에겐 대재앙이다. 이들과 이해를 함께하는 국내 세력에게도 북한체제 존속은 기득권 유지의 초석이며 모든 기회의 산실이다. 백성들이 죽든말든 체제생존에 모든걸 걸고 있는 북한 기득권자들에게도 대립과 갈등은 복음일 수 있다. 생존을 위해 핵 도박까지 벌이고 있는 북한은 이미 역사의 장애물로 전락하지 않았나. 도덕적이지도 못하면서 생존 자체가 목적인 국가의 생존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정이 이런데도 통일을 바라다니. 불쌍하고 무망한 노릇이 아닌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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