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호남 결합…공멸 위기서 손잡아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과 정동영 전 의장은 보완재다. 한 쪽의 장점은 다른 쪽의 단점이다. 열린우리당 대주주인 두 사람이 공멸의 위기 앞에 손을 잡았다.
지난 2월18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두 사람은 ‘죽기 살기’로 싸웠다. 그 뒤 지방선거에서는 각각 유세단을 이끌고 전국을 순회했다. 명분상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은 함께 지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출구조사 발표 직후 정동영 의장은 김근태 최고위원을 찾아갔다. “질서있게 수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의장직을 승계해 달라는 얘기였다.
김근태 최고위원은 망설이다가 지난 4일에야 답을 내놨다. “혼란을 방치하기보다는 당이 새로운 길로 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진정 책임지는 일이다.” 이후에도 김혁규 정덕구 의원 등 당내 ‘보수파’가 ‘김근태 체제’를 반대했지만, 정동영 전 의장은 이들을 적극 만류하며 김근태 의장을 지원했다.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두 사람 사이엔 일종의 ‘묵계’가 있는 것 같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묘하게 맞아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근태 의장은 2월 전당대회와 이번 지방선거를 거치며 ‘퇴출’ 위기에 몰렸다. 따라서 어차피 이번 ‘마지막 기회’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동안 대립 관계였던 당내 ‘실용파’의 ‘수장’이 “도와주겠다”고까지 했다. 그렇다면 ‘한 번 해볼 만 하다’고 판단했음직하다. 그가 11일 첫 기자 간담회에서 ‘개혁’이 아니라, ‘추가 경제성장’을 강조한 것도 이런 흐름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정동영 전 의장에게는 때마침 ‘김근태’가 필요했다. 둘 다 물러나면 당은 풍비박산이 나고, 정 전 의장은 언젠가 복귀할 명분이 없어진다. 정 전 의장은 지난 1일 사퇴 회견을 마치고 서울을 떠나며 당내 주요 인사들에게 전화를 건 일이 있다. “그동안 도와줘서 감사합니다.” ‘돌아오겠다’는 의사 표시로 해석한 사람들이 많았다.
‘실용파’ 의원들 중에는 김근태 의장의 ‘역할’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등 당내 ‘급진 개혁파’를 ‘개혁파’인 김근태 의장의 손으로 이 기회에 제거해 달라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을 유도해 달라는 주문도 같은 맥락에서 나오고 있다. 또 한 가지, 민주당과의 통합에서 당의 ‘얼굴’을 해 달라는 요구도 있다. 정동영 전 의장이 하면 ‘전북과 전남’의 통합이지만, 김근태 의장이 하면 ‘개혁과 호남’의 결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용파’ 의원들은 김 의장을 대선후보로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대중성이 너무 떨어진다는 것이 이유다. 따라서 대선후보는 정계개편 이후에 정동영 전 의장 등 여러 사람이 참여해 동등한 조건에서 다시 겨뤄야 한다고 보고 있다. 김 의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대권을 위해 꼼수를 부리는 정치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뒷맛이 남는 표현이다.
shy99@hani.co.kr성한용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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