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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후세인 처형한 미국, 진실도 함께 묻나

등록 2007-01-04 14:46수정 2007-01-04 17:23

한승동의 동서횡단 /

지난달 30일 일사천리로 처형당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죄목은 두자일 주민 148명 살해에 따른 ‘인도에 반한 죄’였다. 두자일 학살사건이 일어난 것은 1982년. 그러나 후세인이 저지른 ‘인도에 반한 죄’ 가운데 훨신 더 중한 것은 화학무기(독가스)를 동원한 쿠르드인 대량학살사건이었다. 그 사건이 일어난 것은 이란-이라크 전쟁 막바지인 1988년 3월. 두 사건 사이에 미국-이라크 수교와 미국의 대규모 이라크 지원(약 300억달러!)이 이뤄졌다.

1979년 ‘호메이니 혁명’으로 팔레비 친미정권이 무너지고 미국-이란은 적대관계로 돌변했다. 인질구출에 실패한 지미 카터 정권이 무너지고 신보수주의의 총아 로널드 레이건 정권이 들어선 뒤 미국은 아랍 친미 온건국들 및 유럽, 소련과 손잡고 이란 시아파 정권 고사정책을 폈다. 1980년 석유수출에 긴요한 수로 사용권문제를 놓고 이란과 분쟁을 벌이던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이 그해 9월 이란을 급습했다. 이렇게 시작된 이란-이라크 전쟁 초기 온통 미제무기로 무장하고 있던 이란은 호메이니 혁명으로 미국인 군사기술자들이 떠나버리는 바람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이란 민중의 저항은 완강했고 아랍세계를 적으로 삼고 있던 이스라엘이 미제무기 부품을 이란에 공급하고 시리아, 리비아가 이란편에 서는 등 진영구조가 뒤죽박죽이 되면서 전쟁은 이후 엎치락뒤치락 장기화했다. 이스라엘 공군 전폭기들이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 영공을 침범한 뒤 이라크의 오시라크 원자로를 때린 것은 1981년 6월이었고 1982년 이스라엘군은 레바논을 침공했다.

1983년 12월 레이건은 제럴드 포드 정권 때 국방장관을 지낸 뒤 제약회사 최고경영자로 있던 도널드 럼스펠드를 이라크에 특사로 파견했다. 후세인과 90분간 만난 럼스펠드는 무기 제공과 석유 파이프라인 건설 등을 앞세워 전면지원을 약속하며 이란에 대한 공세를 부추겼다. 1984년 11월 미국-이라크가 정식 수교한 뒤 미국의 이라크 지원은 공식화했다. 이후 1988년 8월 전쟁이 끝날 때까지 미국의 후세인 정권 지원규모는 297억달러에 달했다. 1986년 뜻밖에도 레이건 정권이 적대국 이란도 음성적으로 지원하는 양다리걸치기를 하고 있었던 사실이 ‘이란-콘트라’사건으로 폭로됐다. 레이건 정권은 불법적으로 중미 니카라과의 우익 콘트라 반군 비밀 지원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란에 몰래 미제무기를 팔았다가 들통난 것이다.

1988년 1월 이라크 남부전선에서 대공세를 편 이란이 이라크 국내 반정부세력인 쿠르드인들을 부추길 것을 우려한 이라크는 그해 3월 화학무기로 쿠르드인들을 살륙했다. 당시 조지 슐츠 국무장관은 “우리는 특별히 (이라크의 화학무기 사용을) 문제시하고 있지 않다”며 사실상 묵인했다는 지판을 받았고, 그때 이라크에 화학무기와 생물무기 원료를 수출한 나라는 미국과 영국이었다.

유럽이 일방적으로 그어놓은 국경선을 인정하지 않고 쿠웨이트가 자국령이라 주장해온 후세인이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짊어진 거액의 빚을 갚아라 독촉한 쿠웨이트를 침공한 것은 1990년 8월이었다. 아버지 부시 정권이 이라크를 친 것은 그 다음해 1월이었고 당시 국방장관은 딕 체니였다. 아들 부시 정권이 이라크를 다시 친 것은 2003년 3월이었고 체니는 부통령이었으며 국방장관은 럼스펠드였다.

후세인을 서둘러 처형함으로써 이란-이라크 전쟁 때 미국이 이라크에 무엇을 약속하고 그것을 어떻게 이행했는지, 쿠르드인 독가스 학살 진상은 무엇이며 미국은 어떻게 대응했는지, 후세인이 왜,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에서 무얼 믿고 쿠웨이트를 침공했는지 알 길이 없게 됐다. 미국은 진실을 바라지 않았던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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