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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세계 인구 줄이자면서 자국출산 장려?

등록 2007-02-01 17:01수정 2007-02-01 20:14

한승동의 동서횡단/

출산율 낮춰 인구를 줄여야 잘 살고 나라가 제대로 된다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면서 자랐다. 중·고교 시절 군사훈련식 아침조례 때마다 비슷한 톤으로 끝없이 되풀이된 교장 훈화의 단골항목중에 인구가 너무 많다는 것도 들어 있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 인구밀도가 네덜란드나 대만 정도를 빼고는 세계최고라는 교과서 얘기는 뇌리에 생채기처럼 깊이 박혔다. 잘 살려면 출산율 낮춰야 한다는 얘기는 불과 얼마전까지만해도 당연지사였다. 그랬는데, 놀랍게도 언제부턴가 우리는 출산율 높이자는 게 나라와 사회의 화두가 된 산아촉진 시대에 살고 있는 자신들을 발견했다. 세계 최저수준의 출산율 1.08로는 경제도 망하고 나라도 망한다, 많이 낳아 애국하자, 이게 오늘 대한민국의 최고 구호다.

그런데 혹시, 어쩌면, 출산억제 산아제한은 잘 사는 나라들이 자신들만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가난한 나라들에 선별적으로 강요하는 부도덕한 선전공작이나 최면 같은 게 아닐까. 세계인구가 60억을 훌쩍 넘어 지구자원이 부양할 수 있는 한계치를 벗어났다는 경고가 나온 지 오래됐다. 인구증가가 지금처럼 가속되면 인류는 머지않아 자멸한다, 자연환경 오염과 재해의 대규모화 다발화도 과도한 인구증가와 이에 따른 과도한 자원소모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런 얘기들이 수없이 쏟아졌다. 성장의 한계를 논한 로마클럽 보고서가 나온 건 1970년대 초가 아니었나. 그럼에도 인구증가와 개발은 멈추기는커녕 오히려 가속화했다. 그럴수록 인구증가와 개발에 대한 경고음 역시 점점 높아지고 날카로와졌다.

그런데, 인구증가를 걱정하고 그 위험성에 대해 떠들면서 정교한 수치와 이론들을 내놓는, 목청높은 잘 사는 나라들 가운데 자국 인구정체나 감소를 반기고 환영하는 나라 봤나. 떨어진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갖은 유도정책을 동원하고 있는 게 대체로 그런 나라들 아닌가. 세계인구가 너무 많으니 줄이자면서 자국민은 늘려야 한다는 건 무슨 논린가. 그리고 인구가 줄면 노동력에 과부하가 걸리고 생산·소비가 줄면서 경제규모도 줄고 결국 국가 자체가 쇠락해간다는 논리는 무조건 옳을까? 그렇다면, 인구 13억의 중국이나 11억 인도조차 20억 30억이 넘더라도 계속 인구를 불려가야 앞길이 창창해진다는 얘기가 된다.

중국 인도의 과잉인구나 못사는 나라들일수록 대체로 높은 출산율은 어떻게든 대처하지 않으면 지구 전체가 망할 거라는 걱정을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하다.

그런데, 자국민 늘리기에 안달하면서 ‘너희는 인구 빨리 줄여라, 안 그러면 큰일난다’고 외치는 잘 사는 나라들 행태가 이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 잘 사는 나라들이 출산율 높이기에 안달복달하는 것은 결국 일국 차원의 기득권 지키기에 올인하겠다는 의사표시다.

그런 퇴행적 선민의식에 빠져 있는 비율은 지구인구의 불과 몇 퍼센트다. 많아야 1할 남짓이나 될까. 그들 대부분은 잘 사는 나라들에 몰려 있다. 프랑스, 독일, 일본만 그런 게 아니라 한국도 거기에 포함된다. 한국에서 출산율 저하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인구증가가 국시급 대책으로 대두된 시기와 한국이 소득 선두그룹에 진입한 시기는 거의 일치한다. 잘 사는 나라들이 인구증가를 꾀하는 것은 구성원 개개인의 삶의 질보다는 집단 전체의 경제규모나 국력을 적어도 지금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겠다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지구적 차원의 불평등을 유지·확대하면서 특권적 소수 상층부의 독과점체제에 편승하겠다는 고질적 패권의식의 발로가 아닐지. 적절히 조율만 한다면 출산율 저하를 지구 생태계 보전, 쾌적한 환경과 실업문제 해소, 평화롭고 질 높은 삶으로 가는 호기로 활용하는 발상전환을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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