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동의 동서횡단 /
동아시아 안정과 번영의 기초는 한반도 분단이다. 분단 해소와 남북 통합을 향한 어떤 시도도 봉쇄돼야 한다. 이것이 21세기 동아시아 열강들 화두다.
한반도 분단론이 등장한 시기는 오래됐다. 16세기 말, 19세기 말 20세기 초 일본과 러시아 등이 그것을 기도했다. 20세기 중반에 미국이 실행에 옮겨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 분단은 고착화했고 동북아시아엔 60여년간 전쟁없는 시대가 계속됐다. 사상 유례없는 장기간의 평화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드문 평화와 번영의 시대가 난도질당한 한반도와 한민족의 무덤 위에 핀 꽃이라는 사실이다.
한반도 분단은 기본적으로 한반도를 차지하려는 외부세력간의 현실적 타협의 결과다.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독점할 수 없는 구조 때문이다. 이것은 민족·국가로 표상되는 집단과 집단간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자기집단 이익을 위해 타집단을 거꾸러뜨려야 하는 맹목적이고 이기적인 정글의 법칙이 관철되는 세계의 얘기다. 미사여구로 가득찬 오늘날의 국제관계란 것도 결국 또 하나의 정글에 지나지 않는다.
한반도가 분할 위기에 직면한 건 남쪽에서 강력한 무장세력이 새로 등장하면서다.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때가 그랬고 메이지 정권 때가 그랬다. 히데요시 때 일본은 조선과 명 연합세력에 밀려 뜻을 이루지 못했다. 메이지 때 영국과 동맹한 일본은 중국의 몰락과 러-일전쟁 승리로 힘의 균형을 깨고 한반도를 독점했다. 일본을 거꾸러뜨린 미국은 일본을 대신해 한반도를 점령했으나 일본을 깨기 위해 동아시아전장에 끌어들인 연합국 핵심멤버 소련과 한반도를 나눠가졌다. 한국전쟁은 각기 핵무기를 보유하고 냉전태세를 굳혀가던 미-소 양대국간의 제한적인 첫 힘겨루기였다. 무승부로 끝난 그 시험전에서 다시 박살난 건 한반도였으며 2차대전 특수가 끝나 불황에 허덕이기 시작하던 미국과 패전국 일본은 한국전쟁 특수로 구원받았다.
분단과 외세의 흥정에 따른 한반도 비극을 끝내는 유일한 길은 남북이 통합해서 외세의 농간을 막을 수 있는 힘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용하려할 뿐 다른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 자기 일족만의 이익 집착해 이 너무나 단순명료한 사실에 눈먼 자들이 남과 북에는 너무 많다.
지난해 12월로 예정됐다가 태풍 때문에 연기됐던 동아시아 정상회의가 지난 15일 끝났다. 정상회의와 그 전후의 각국간 수뇌회동에서 끊임없이 거론됐던 주요화두의 하나가 핵실험과 일본인납치를 재료로 삼은 북한견제와 압박과 봉쇄였다. 특히 일본이 그것을 주도했다. 아베 신조 총리는 동아시아정상회의 직전 찾아간 유럽·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서도 쉼없이 그 문제를 거론했다. 필리핀 세부에서 만난 원자바오 중국총리, 노무현 대통령을 붙들고 한 얘기도 그것이었고 고이즈미 퇴장 뒤 대일관계 개선 명분을 찾고 있는 중국도 못이긴 척 동조했다. 미국 후원 아래 인도와 호주, 뉴질랜드까지 동아시아정상회의에 끌어들여 중국 기세 꺾기에 나선 일본이 노리는 건 결국 분단을 근간으로 한 한반도 현상유지, 2차대전 이후 세계구도를 확정지은 얄타체제의 지속이다. 납치행각과 핵실험을 저지른 북한을 악인으로 몰아가는 것은 식민지배와 전쟁으로 얼룩진 가해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피해자로 세탁하고 남북한을 이간시킴으로써 일본 재건과 번영의 토대였던 한반도 분단과 미-일동맹을 영구화하는 기막힌 장치다. 주변안정과 미·일과의 한시적 밀월을 ‘도광양회’와 ‘화평굴기’의 전제조건으로 보는 중국은 일본의 계략을 뻔히 알면서도 오히려 즐기고 있다.
분단 한반도와 남북간 소모적 대결은 주변 외세들간의 모순을 배출하는 쓰레기 처리장이며 그들을 살찌우는 마르지않는 복음의 샘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