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동의 동서횡단 /
지난 달 말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일본 정상회의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먼저 끄집어낸 쪽은 아베 총리였다. “인간으로서, 총리로서, 마음 깊이 동정하고 있다. 죄송하다는 생각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받았다. “위안부 문제는 세계사에서 유감스런 한 장이다. 나는 총리의 사죄를 받아들인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이 황당한 장면을 이렇게 비판했다. “총리가 사죄해야 할 대상은 위안부가 아닌가. 총리는 일찌기 고노 담화에 반발했던 만큼, 피해자를 배려한 발언을 해왔다고 하긴 어렵다. 국내에선 비판받더라도 개의치 않더니 미국에서 분규가 나면 곧바로 사죄한다. 이건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하지만 아베야말로 사태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베는 아마 한국에 상당한 배려를 한답시고 그러지 않았을까. 웬고 하니, 워싱턴이 서울에 파견한 ‘조선총독’보다는 ‘본국 원수’에게 사과하는 것이 훨씬 더 정중하고 예의를 갖춘 예법일 테니까. 그러지 않고서야 그가 위안부와는 아무 인연이 없는 워싱턴에 가서 왜 사죄를 했겠는가.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워싱턴이 점잖게 일갈하고는 “사죄를 받아들인다”고 한 점이다. 미국 대통령이 무슨 자격으로? 그가 ‘사죄 수용, 이상 끝’하면 사태가 깨끗이 종결되기라도 한단 말인가. 조선 사람을 자신이 통치하는 국민, 신민이라고 간주하지 않는 다음에야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여기서 <아사히>가 지적한 “국내에선 비판받더라도 개의치 않더니 미국에서 분규가 나면 곧바로 사죄한다”는 말을 주목해야 한다. 군위안부 분규가 났는데 왜 일본에선 무슨 소리가 나도 가만 있다가 미국에만 가면 곧바로 사죄하고 난린가. 이것 역시 미국과 일본이 한국 또는 한반도를 자기들 속방 정도로 간주하고 있다는 얘기와 통한다. 왜 당사자들을 놔두고 가해자와 제3자가 만나 자기들끼리 사죄니 수용이니 하며 주거니 받거니 하고는 사태종결을 선언해버리는가. 1905년 7월에 조선을 놓고 암거래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아직도 유효하단 말인가.
아베가 부시에게 사과한 게, 미 연방하원에서 일본계 마이크 혼다 의원이 주도한 일본의 위안부관련 범죄행위 고백과 사죄, 보상 결의안 문제로 공화당 정부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으니, 그래서 죄송하다고 한 것인가. 아니면 진짜 죄송해서가 아니라 미국이 떠들면 재미없으니까 부시에게 제발 좀 입좀 막아달라고 읍소한 게 ‘혼네’인가.
아베가 미국에 간 그때가 바로 미국과 일본의 그런 관계를 공식적으로 확정한 이른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같은 날 샌프란시스코 미군부대에서 조인한 ‘미일 안보조약’이 발효된 지 52년이 된 때다. 그때 수백만명이 죽어가고 있던 한국전쟁을 미국은 대소봉쇄 냉전구도 확립에 근간이 된 친미국가 일본의 국제무대 복귀와 미군의 일본주둔을 보장한 미일 안보조약 체결의 호기로 활용했다. 안보조약이 발효된 건 1952년 4월28일이다. 일본인 누구의 표현에 따르면 그날 이후 일본은 미국에게 일제의 만주국과 같은 신세로 전락했다.
존 포스터 덜레스니 딘 애치슨, 조지 케난 등 당시 미국 동아시아정책을 좌우했던 미국 고위관리들의 목표는 오로지 일본을 재무장시켜 미국의 동아시아 냉전파트너로 육성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군위안부 문제 따위는 완전히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승국 지위도 박탈해버렸고, 일본의 재건에 마이너스 요인인 아시아 각국의 대일 배상요구도 무산시켰다. 일제의 최대 피해자들인 남북한과 중국은 아예 초청대상에서도 빼버렸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강화조약’이었나. 오로지 미국과 일본을 위한 담합이었을 뿐이다.
왜 아베가 미국에 가서 사죄하고, 왜 미국 대통령이 일본총리의 사죄를 받아들인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지, 뿌리는 거기에 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왜 아베가 미국에 가서 사죄하고, 왜 미국 대통령이 일본총리의 사죄를 받아들인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지, 뿌리는 거기에 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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