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진/한국싸이버대 상담학부 교수
학습 클리닉 /
고등학생 윤호는 카레이서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나 어려운 가정 형편을 생각하면 도저히 부모님께 그 준비 과정에 필요한 적지 않은 비용을 부담해 달라고 요구할 수가 없었다. 카레이서가 되려는 꿈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꿈을 접는 순간 윤호는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찾기가 힘들어졌고, 자연히 성적은 급격히 떨어졌다. 윤호의 귀가 시간도 점차 늦어졌다. 공부하라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잔소리가 돼버린지 오래였고, 책을 펼쳐도 집중이 되질 않았다.
윤호와의 이야기는 먼저 왜 윤호가 카레이서라는 꿈을 가지게 됐는지부터 시작했다. 비록 접어둔 꿈이지만 그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두 눈이 반짝거렸다. 그리고 아쉬움과 원망…. 이야기를 하다보니 귀가 시간이 늦어지는 이유도 자연스레 밝혀졌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오락실에 들러 게임을 한다는 것이다. 모의 자동차 경주 게임이었다. 거기서 핸들을 잡고 달리는 시간이 유일하게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시간이라고 했다. 그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찡해졌다. 하지만 아쉬움과 원망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윤호에게는 적성검사를 해보도록 했다. 검사 결과 윤호가 흥미를 가지고 있는 학과와 직업군을 찾아낼 수 있었다. 주로 기계와 관련된 분야였다. 그렇지만 카레이서가 되겠다는 꿈이 너무나 강했던 윤호는 검사 결과를 보면서도 그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 결정하질 못했다. 나는 다시 질문했다. “윤호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참 많지? 선택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하기 전에 말이야, 장래 내가 하는 일 중에 이런 일은 꼭 들어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 있니?”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윤호는 무엇을 하든 ‘자동차’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카레이서는 포기했지만 ‘자동차’는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전보다 더 구체적인 선택이 가능해졌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윤호는 점차 자신이 가지고 있던 꿈 중 포기할 부분과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을 구별하게 됐다.
이야기가 좀 더 진행되자 윤호는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는 가능하면 경영대학원도 진학해보겠다고 했다. 전공을 살려 사업을 하고 싶은데 그 때 필요할 것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다시 카레이서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윤호에게 있어 카레이서의 꿈은 도무지 놓을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들고 들어갈 수 없는 현실이라는 작은 문이 그렇게 싫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윤호는 이제 그 꿈 보따리를 완전히 버리지 않고, 조금씩 나누어 들고 가는 방법을 찾게 됐다. 모르긴 해도 내일은 책장을 넘기는 윤호의 손이 조금은 더 가벼워질 것이라 생각한다.
신을진/한국싸이버대학교 상담학부 교수 ejshin81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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