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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거침없는 성장 ‘이건희, 황제경영 20년’ 종언

등록 2008-04-22 21:42수정 2008-04-23 10:11

1987년 삼성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이건희 회장은 취임사에서 창업자의 뜻을 받들어 삼성그룹을 초일류 기업으로 발전시켜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삼성물산 〈종합상사 20년사〉
1987년 삼성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이건희 회장은 취임사에서 창업자의 뜻을 받들어 삼성그룹을 초일류 기업으로 발전시켜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삼성물산 〈종합상사 20년사〉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자” 신경영 선언 화제
주가총액 140배 증가…브랜드 가치 세계 21위 올라
과감한 투자 뒤엔 자동차·유통사업 실패 ‘그림자’
“20년 전 저는 삼성이 초일류 기업으로 인정받는 날, 모든 영광과 결실은 여러분의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어 정말 미안합니다.”

‘삼성가족 여러분’을 부르기 전, 이건희 회장은 잠시 멈칫하는 듯했다. 지난해 그룹 회장 취임 20주년을 맞았던 그는, 20주년 기념식도 따로 하지 못한 채 물러나게 됐다.

지난 세월 이 회장이 우리 사회에 준 영향력은 경제계의 범위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 회장은 그 이전까지 베일에 가린 ‘은둔적 경영자’의 모습에서 벗어나 지난 1993년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을 통해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자.” 양적 팽창으로 치달려오던 한국 경제와 사회에 ‘질 경영’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자는 제안이었다.

1942년 대구에서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의 8남매 중 끝에서 두번째인 3남(아들 중 막내)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외롭게 보낸 그는, 형 맹희·창희씨를 제치고 일찌감치 ‘후계자 수련’을 받아 왔다. 일각에선 이병철 회장이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총수에서 물러나고 전문경영인 도입 문제가 제기됐을 때 이건희 회장이 “끌고 나갈 때까지 나가 봅시다”라며 강한 의지를 보인 것이 결정적이라는 말도 있다. 또한 부인 홍라희씨의 아버지 홍진기씨의 영향력이 컸다는 말도 있다. 내무부 장관을 지낸 고 홍진기씨는 이병철 회장에겐 ‘평생의 파트너’와 같은 존재였다.

이건희 회장 퇴진까지
이건희 회장 퇴진까지
95년 이 회장은 “우리나라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다”라는 베이징 발언으로 또한번 파장을 일으켰다. 7·4제(7시 출근 4시 퇴근) 도입, ‘천재 경영’ 등을 통해 그는 다른 기업들을 선도해 나갔다.

2005년 고려대 학위 수여식에서 벌어진 사건은 그의 비대해진 사회적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에게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주려던 수여식이 학생들의 시위로 무산되자 어윤대 당시 총장을 비롯한 고려대 보직교수가 일제히 사표를 냈다.

외견상 이건희 회장 재임 20년 동안 삼성의 경영 성과는 눈부시다. 취임 당시 14조원이었던 그룹 매출은 2006년 말 152조원으로 약 11배 가까이 늘었고 이익은 1900억원에서 14조2000억원으로 75배, 주식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140조원으로 무려 140배나 증가했다. 2007년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169억달러로 세계 21위, <포천>이 선정한 세계에서 존경받는 기업 순위에선 34위를 차지했다.

삼성은 이런 비약적 성장의 힘을 이 회장의 카리스마와 탁월한 리더십 덕분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삼성의 고속 성장의 이면에는 황제경영이 자리잡고 있었다. 또 그가 주도했던 자동차나 유통사업 실패 등에 대한 평가도 냉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외아들 재용씨한테 무리하게 경영권을 넘기려고 전략기획실을 통해 저지른 온갖 탈법과 불법의 가장 큰 책임은 그에게 있다.

‘회장님 지시 사항’과 같은 문건에도 나타나듯이, 경영 일선에 대한 시시콜콜한 현안부터 로비 방법까지 지시하는 철두철미한 ‘황제’로서의 모습도 있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삼성헌법’이 됐고, 지나친 실적을 강요하고 감시와 통제가 지배하는 삼성 내 기업문화가 ‘공포경영’이라는 말까지 듣게 됐다. 특히 삼성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처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는 등 우리 사회 법과 대결하려는 모습까지 보여 정치와 사회에까지 그 영향력을 끼치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제 이 회장은 이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겠다고 밝혔다. “지난날의 허물은 모두 제가 떠안고 가겠습니다”라고.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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