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의 경영 일선 퇴진 등이 담긴 경영쇄신안이 발표된 22일 삼성 직원들이 점심식사를 하려고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을 나서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몇몇 사장·여직원들 이 회장 발표때 눈시울 붉혀
대부분 “예측 수순”…전략기획실 해체에 더 놀라
대부분 “예측 수순”…전략기획실 해체에 더 놀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22일 오전. 전국의 삼성맨들이 술렁거렸다. 아침부터 사내방송으로 예고된 ‘11시 그룹 방송’ 때문이었다. 이번주 내 발표가 예고됐던 ‘그룹 쇄신안’ 관련 내용일 것이 뻔했다.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의 사내방송에선 10시50분이 되자 음악이 흘러나왔다. 직원들은 일손을 멈추고, 회의실에 있던 직원들도 회의를 중단하고 나와 모두들 텔레비전을 주시했다. 국내에서 일하는 18만 삼성 직원들이 대부분 그랬다. 방송에서 이건희 회장이 등장하자 모두들 숨을 죽였고 이 회장이 퇴진을 선언하자 한숨과 안타까움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쇄신안 발표 뒤 점심시간. 삼성 본관 뒷편의 공원에는 비가 점점이 내리는 가운데 어두운 표정을 한 삼성 직원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귓속말로 또는 큰소리로 하는 말의 내용은 모두 쇄신안과 관련한 이야기였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거냐’는 질문부터 미뤄져 왔던 인사와 관련된 예측까지 다양한 말들이 오갔다. 식사를 마친 뒤 뒷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을 찾기 힘들었다.
삼성 안에서 쇄신안에 대한 반응은 두갈래다. 삼성이 일방적으로 당했다는 억울함과 속시원하게 털고 다시 출발하자는 결의다. 특히 간부급 이상과 일반 직원들 간의 괴리가 컸다. 삼성의 한 고위 간부는 이번 쇄신 방안에 대해 “삼성이 옥상에서 떨어지는 것 말고는 다했다”고 표현했다. ‘더 이상 뭘 어떻게 내놓냐’는 태도다. 다른 간부는 “정의가 불의를 이긴 거라면 모르겠지만… 이건 아니지 않느냐”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20년 동안 삼성을 이끌어온 이건희 회장이 이렇게 모양새 나쁘게 물러나는 것이 못내 아쉬운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를 두고서는 “아들이 무슨 죄가 있냐”는 말이 나왔다. ‘열악한 외국 사업장에서 시장개척 업무’를 하게 될 것으로 예정된 이 전무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 나왔다. 전략기획실 직원들은 “겉으론 웃고 있지만 울고 있다”고 착잡함을 토로했다. 발표회장에서 이 회장 뒤에 앉아있던 40여명의 사장단들은 모두 입을 굳게 다물고 눈을 지긋이 감고 있었다. 이 회장이 발표하는 동안 몇몇 사장들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일부 여직원들도 눈물을 쏟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반 직원들은 무덤덤했다. 삼성계열사의 한 대리는 “이건희 회장의 퇴진은 사내에서는 이미 예측돼 온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재용 전무가 이제 일선에 나서야 되기 때문에 이 회장이 이번 기회에 물러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으며 도리어 이학수, 김인주의 퇴장과 전략기획실 해체에 대한 놀라움이 더 컸다”고 말했다. 또다른 직원도 “그룹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에는 삼성그룹은 한가족이라는 인식이 많이 약해져서 각사 체제가 더 홀가분할 것이라고 보는 직원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도리어 이번 파동이 끝나고 나면 사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그동안 미뤄졌던 보너스도 나오는 것 아니냐는 기대를 하는 직원도 있다”고 전했다.
이형섭 김영희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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