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구두 뒤축에는 지구의 자전이 매달려 있다 호수에 날은 저물고 웅웅 편서풍이 분다 멀리서 지평선이 언덕을 내려놓고 달을 들어올린다 여행용 컨테이너처럼 그의 몸은 조립식 그는 몸을 펼쳐 텐트를 친다 발목사슬에 달고 질질 끌고 온 세월은 문 밖 기둥에 백기처럼 걸어놓는다 여기서 물고기를 잡...
연산주 때 왕의 남자에 견줄 광해주 때 왕의 여자, 介屎(개시)가 있었다. 기록을 보면 선조를 독살한 여인으로, 또 광해주의 사랑을 받고 나랏일도 주무른 이로 나타나는데, 시대상으로 보아 두 사람일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광해주가 아비를 독살하고 왕이 됐다는 주장은 인조반정에서 내세운 큰 명분이었다고 한...
마녀는 꼭 여성을 지칭하지 않는다. 마녀(witch)는 고대 영어에서는 남성형(wicca)과 여성형(wicce)으로 분리돼 있었다. 중세 유럽에서 마녀로 기소된 이들 중 75%가 여성이다. 해리포터 연작에 나오는 마법사(sorcerer)는 비록 마술을 부리지만 악마를 숭배하는 마녀와는 뚜렷이 구별된다. 오즈의 마법사도 사기꾼이지...
평양이나 금강산에 가서 ‘오징어포’를 주문하면 ‘말린 낙지’가 나온다. 남녘의 오징어를 북녘에서는 ‘낙지’라 하고, 남녘의 낙지를 북녘에서는 ‘오징어’라 하기 때문이다. 금강산에서는 낙지가 아닌 ‘오징어포’가 나올 수도 있는데, 아마도 남북 말차이를 알고 있는 접대원이 ‘마른낙지’로 주문을 바꿔 생각했을 것이다....
몇 년 만에 찾아간 봉분에는 장대비에 패어나간 자리가 흉하게 남아 있습니다 흙 속에나 깊이 묻혀 있어야 할 시간들이 새어나와 서성입니다 아득한 저승길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시간이 이렇게 길을 끌고 나와 있습니다 새순 대신 돋아 나오는 잡초들은 모두 뽑아 버리기로 합니다 공설묘지 입구에서 사 들고 올라간 마...